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M4 셔먼 (문단 편집) ==== 화력 ==== > 포구 초속이 더 빠른 독일 전차가 셔먼 주포 사정거리 밖에서 쏴제껴대니 별 수 있습니까. 1,000미터에서 독일 놈들이 아군 전차를 격파하는 건 조낸 많이 봤는데, 아군 셔먼이 판터나 티거를 300미터 이상에서 격파한 걸 본 적은 없습니다. (M4 Sherman at War) > > 까놓고 말해볼까요? 우리 기갑 부대가 병신 같아서 실제로 판터와 티거를 부수는건 우리네 공군과 육군 항공대죠. 아니면 독일 놈들이 자폭했든가요. 그리고 반대로 더러운 독일 놈들 기갑 부대는 졸라 짱 쎄서 우리 전차 85%가 독일 전차, 돌격포 그리고 [[대전차포]]에 당했습죠. > > 솔직히 우리네 포구 초속 느린 75, 76mm 주포로는 독일 놈들의 75, 88mm를 당해낼 수 없습니다. >---- > ㅡ 제66 기갑 연대 폭스 중대장 헨리 W. 존슨(Henry W. Johnson) 대위. 2차 세계 대전 당시 셔먼을 대체하기 위해 미 군수부에서 [[T20|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하지만 개발하면서 발생한 문제점을 해결하지 못 하면서 양산이 미뤄지는 와중, 트라이던트 회담(1943년 5월 25일)에서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날짜가 잡히게 된다. 신형전차가 D-Day전에 완성되기 힘들 것으로 판단되자, 신형 주포인 76 mm gun M1만 상륙작전 전인 1943년 6월부터 셔먼에 T23의 포탑을 장착하여 양산 준비에 들어가 1944년 1월 양산을 시작했지만(M4A1E6셔먼) 대서양 수송으로 인해서 영국에 200대 가량이 도착했음에도 기종변환 훈련시간 부족 등의 이유로 상륙작전에서 배재하면서 D-Day에 투입하지 않았고, 독일의 [[판터 전차|전차]]와 셔먼은 75mm를 장착한체 마주하게 되었다.[* 소련의 티거에 대한 75mm 포의 관통력 실험에선 티거의 차체 측면에 발사시 [[http://tankarchives.blogspot.ca/2013/03/sherman-vs-tiger.html|650 미터에서 관통이 가능]]했다. 단, 해당 자료의 링크 사진은 위의 관통력 실험 외에도 화력 시험용으로 몇번 사용된 후의 사진이다.] 결국 신형주포를 탑재한 M4A1E6는 7월 [[노르망디 상륙작전#s-4.3.5|코브라 작전]]부터 참가하게 된다. || 포(탄종) || 500야드(457m) || 1000야드(914m) || 1500야드(1371m) || 2000야드(1828m) || || 75mm M3 (AP M72) || 76mm || 63mm || 51mm || 43mm || || 75mm M3 (APC M61) || 66mm || 60mm || 55mm || 50mm || || 76mm M1A1 (AP M79) || 109mm || 92mm || 76mm || 64mm || || 76mm M1A1 (APCBC M62) || 93mm || 88mm || 82mm || 75mm || || 76mm M1A1 (HVAP M93) || 157mm || 135mm || 116mm || 98mm || || 17 파운더 (APCBC MK.VIII T) || 140mm || 130mm || 120mm || 111mm || || 17 파운더 (SVDS[* Super Velocity Discarding Sabot. 분리철갑탄(APDS)의 영국군 제식명]) || 208mm || 192mm || 176mm || 161mm || 표기된 관통력은 30도로 기울인 RHA 강판에 사격한 결과.[* R.P.Hunnicutt - Sherman: A History of the American Medium Tank. PRESIDIO] 하지만 그 76mm마저 '''생각보다 시원치 않았다.''' 일단 76mm 포는 1942년 제작을 시작한 당시 충분한 화력이였지만[* 이를 두고 셔먼에 이미 76mm를 장착했다고 하지만, 시험 탑재라기 보다는 탑재해서 개발했다는 것이 맞다. 주객의 전도된 것으로, 3인치 대전차포를 개량하여 M1 대전차포를 만드는 과정에서 셔먼에 탑재한 것이다.], 정작 탑재는 T23의 포탑이 나오고 셔먼에 탑재 되면서 1944년 1월이 되면서 였고, 배치되기 시작한 것은 연합군이 티거와 판터를 비롯한 독일의 신형 전차를 조우한 후인 1944년 중반에 들어서였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미군 수뇌부는 76mm를 사용한다면 판터고 티거고 충분히 자국산 전차로 상대할수 있다고 판단해 버렸다. 판터의 장갑 두께가 얼마나 되는지 정보를 입수하여 동일 두께의 장갑판에 사격을 해본 후에 관통가능이란 결과가 뜬 후 내린 결정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실제로 맞붙어 보자 이야기는 전혀 달랐다. 탄착각 때문이라는 말이 있지만 셔먼에도 경사장갑을 채용했기 때문에 그것 때문은 아니고, 장갑의 재질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표면경화장갑|독일제]] 장갑판은 [[균질압연장갑|미국산]]보다 경도가 더 높아 같은 두께에서도 일격은 더 잘 버텼지만 지속적인 타격이나 큰 충격에는 약했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attachment/M4 셔먼/m62apcbc.jpg|width=100%]]}}} || || '''{{{#ffffff M62 APCBC vs [[6호 전차 티거|{{{#ffffff 티거}}}]], [[5호 전차 판터|{{{#ffffff 판터}}}]][* [[M10 GMC]]의 [[3인치 M5 대전차포|M7 3인치 대전차포]]에서 발사된 것이지만 탄환 자체는 셔먼의 [[76mm M1 전차포]]와 같다. [[https://en.wikipedia.org/wiki/76_mm_gun_M1|76mm m1은 이보다 더 가벼운 포면서 머즐브레이크 추가로 제퇴 성능이 좋아져 좀 더 빨리 쏠 수 있다. 거기다 강선을 깎기가 좀 더 쉬웠다고 한다.]]] Fail이라 적힌 부분은 일반적인 교전거리 내에서 관통 불가, 숫자는 거리로서, 1200이면 1200야드에서 관통했다는 것.}}}''' || ||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external/pds26.egloos.com/e0125886_50f6a13579a42.jpg|width=100%]]}}} || 독일 육군 병기국 1과가 자체적으로 셔먼을 상대로 한 자국 판터의 관통실험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도출되었다.[* http://panzerkatz.egloos.com/340401, 자료의 자체출전은 Thomas L. Jentz, Germanys Panther Tank: The Quest for Combat Supremacy (Schiffer Publishing 1995) 127p] 거기다 업건의 시기가 애매해서 1944년 1월에서야 업건한 M4A1(76)을 생산하고 대보병 능력이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상륙작전에서 배제하여 [[노르망디 상륙작전|D-Day]]를 넘겨 버렸고, 1944년 7월의 [[노르망디 상륙작전#s-4.3.5|코브라 작전]]에서 데뷔하게 된다. 결국 고작 한달의 시간 차이로 셔먼(76)과 셔먼 파이어플라이[* 무려 셔먼 파이어플라이는 상륙작전 전에 예정된 물량인 2천대를 전부 전투부대에 배치시켰으며, 상륙 이후에 200대의 챌린저 전차까지 배치하였다. 거기다 [[퍼니전차|상륙작전 준비]]도 영국이 훨씬 철저했다.]의 평가는 극과 극으로 나뉘게 된다. 오죽하면 위에서 76으로 바꿔준다고 해도 "75나 76이나 정면에선 안 먹히거든요? 그리고 어차피 측면 노리고 파고 들어야 되면 차제가 좀 더 가벼워서 달리기 빠르고 연사력 좋은 75가 훨 나음요." 하고 76 셔먼의 수령을 거부하는 경우까지 있었다. 그 대표적인 부대가 바로 아라쿠르 전투의 선봉에 서서 독일군의 판터마저 탈탈 털어버린 미 제 4기갑사단. 다만, 포를 교체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준비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에 급해서 그랬을 수도 있다. 일단 포탄이 필요하고, 기존의 승무원과 정비병을 재훈련 시켜야 하며, 새로운 교리를 만들어야 하는 등, 그냥 쉽게 반짝 하고 바꿀 수 없으니까.[* 당시 패튼의 부대는 마켓가든 작전으로 연합군 전채의 진격이 멈출 때까지 독일 본토로 전력질주를 하고 있었다. 보급도 따돌리고 달리는데 기종전환의 여유가 있을리 없다.] 뒤늦게 상황을 인지하고 대응에 나섰지만 때는 너무 늦었고, 판터의 전면 장갑을 관통할 수 있는 M93 HVAP탄이 제식으로 채용된 것은 슬슬 티거와 판터의 씨가 말라가던 1945년 2월 경[* Zaloga, S., M4 (76mm) Sherman Medium Tank 1943-65, p. 19. 전선에 처음 투입된 [[프로토타입]] HVAP탄은 1944년 말경에 차량 1대당 1달에 '''1발'''씩만 겨우 지급하던 귀한 탄이었지만, 판터의 포탑 전면을 일단은 800~1000m 거리에서 관통시킬 수 있었기에 전선에서 [[현기증 난단 말이에요|보급해달라는 요청이 줄을 잇게 된다]]. 그 이후 관통력이 더 강화되고 제식 채용이 되면서 생산량이 본격적으로 늘어난다. 물론 제식으로 채용됐다고 곧장 보급이 원할하게 됐던 것도 아니어서 사실상 HVAP탄은 WW2시점에서는 계속 희귀한 탄이었으며 6.25시절에나 T-34를 상대로 재대로 사용 할 수 있게 된다.] 이었던 데다가, 76mm 급의 HVAP같은 소구경 고속탄은 거리가 멀어질수록 위력이 급감하고 입사각 영향을 심하게 받기에 완벽한 해결책은 아니었다. 1944년 8월 30일 행해진 미군의 76mm 와 17파운더 대전차포의 관통력 비교 시험에선 판터의 전면에 대해 200 야드 거리에서 발사된 76mm HVAP 4발중 3발이, 명중한 17 파운드 APDS 2발중 1발, APCBC탄 두발은 균열만 발생시켰을뿐 관통에 실패한 사례도 보고 되었는데,[* 시험 대상은 3대의 노획된 판터 전차로 장갑재의 균열 발생 여부에 따라 최상급(best plate), 평균급(average plate)으로 구분했으며, 이 경우는 average plate로 구분된 3번 판터에 대한 실험이었음에도 이런 결과가 나왔다. 해당 실험에선 17파운더 APDS와 17파운더 APCBC, 76mm HVAP탄의 효율은 비슷하다는 결론을 내리며 그 이유로 17파운더의 강력한 관통력에 반하는 심각하게 낮은 명중률, 17파운더 APCBC탄과 76mm HVAP탄의 만족스러운 명중률에 비해 부족한 관통력을 들었다. 76mm HVAP탄에 대하여서는 '현시점에서는 76mm급의 포에선 중장갑 목표물을 대상으로 사용가능한 가장 효율적인 물건이란 결론을 내렸는데, 이는 어디까지나 '''76mm 급에선 가장 쓸만하다'''는거지 76mm HVAP만 있으면 다른 게 필요 없을 정도로 좋다는 소리가 아니다. U.S. Army Firing Test No.3 / U.S. Army Firing Tests conducted August 1944 by 12th U.S. Army Group at Isigny, France. Board of Officers. APO 655] RHA 강판에 대한 관통력 시험 결과 대로라면 200 야드 거리에선 당연히 모든 탄이 판터의 전면 장갑을 관통 했어야 한다. 하지만 [[T20]]이 계획대로 셔먼을 대체했다면 수뇌부 입장에서 76mm(17파운더 포함) 채용보류는 오판은 아니였다. 76mm는 고폭탄 화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2차 대전 당시는 아직 포탄을 제조하는 기술이 부족했던 시절이라서, 포구속도를 증대시키기 위해 전차포탄의 약실/포강 압력을 강화하면 고폭탄두도 더 센 압력을 버틸 수 있을만큼 외피 두께를 늘릴 수밖에 없었다. 자연히 반대급부로 실리는 작약의 양은 줄어든다. 구경이 비례해 커진다면 별 문제가 없었겠지만 75mm와 76mm는 체적 면에서 거의 차이가 없었다. 그 결과 76mm M1포의 고폭탄 작약량은 약 0.9파운드였던 것에 비해 75mm M2~M6포의 고폭탄 작약량은 1.5파운드로, 75mm 쪽이 1.5배 이상 위력이 강했다. (Ordnance Department, United States (1944). TM 9-1901 Artillery Ammunition June 1944. War Department., p.356, 359)] 76mm셔먼을 배치하면서 [[옆그레이드]]가 되어 버렸고, 그것을 보충할 105mm셔먼과 75mm셔먼을 혼합배치 해야 했다, 그렇다고 독일처럼 대전차포인 76mm로만 통일 하기에는 대전차전보다 대보병전이 압도적으로 많았던데다, 76mm는 이미 [[대전차 자주포]]가 사용하고 있었으니, 셔먼에 같은 포를 장착하면 독일의 [[구축전차]]처럼 중복투자가 되어 버린다. 또한 75mm M64 백린연막탄도 전체 적재량의 10% 수준으로 수량은 적었지만, 연막탄 본연의 목적과 더불어서 대보병, 대진지, 대차량[* 아래에서 티거 2를 상대로 발사하여 승무원 이탈을 유도하는 등, 때로는 철갑탄보다 더 큰 전과를 이루기도 했다.] 목적으로 전부 쓸 수 있는 만능 포탄으로 크나큰 호평을 받았다. 반대로 76mm M88 연막탄의 성능은 그저 그랬기 때문에 76mm포 셔먼으로 교체받은 전차 대대도 백린연막탄 발사 용도로 75mm포 셔먼을 한두대씩 계속 운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결국 미국의 오판은 셔먼의 업건 보류와 함께 90mm 포 탑재에 관한 것으로, 기갑국은 셔먼(전차)에 90mm를 달아서 내놓으라고 요구했는데, 병기국은 76mm에 만족하면서 T25(전차)에 90mm를 탑재할지 말지(90mm가 필요한지)로 논쟁 하다가 90mm를 [[대전차자주포]]에 장착하여 생산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길어진 논쟁으로 1944년 4월부터 생산이 시작되어 76mm 셔먼과 마찬가지로 D-Day를 놓쳤고, 실전에 투입하니 90mm를 장착하였어도 [[대전차자주포]]의 한계로 인해 전선에서는 90mm를 장착한 [[전차]]의 요구가 쇄도하게 된다. 결국 90mm를 장착할 역량이 충분했던 셔먼은 90mm 장착 전차의 전선수요가 발생한 다음에 다시 고려되었으나, 퍼싱의 양산준비 시간이나 90mm 셔먼의 양산준비 시간이나 비슷하고, 퍼싱의 양산에 방해될 수 있단 판단이 나와버려 포기해버렸다. 다만 공군 해군 위주의 미군에게 육군은 언제나 후순위였다. 현실적으로 생각했을때 2차대전 서부전선은 전차전이 중심이 아니라 보병이 중심이었다. 미군 전차병이 수천명의 사상자를 낼 때 미군 보병은 15만명의 사상자가 나왔다. 설령 독일군의 전차가 성능적으로 우위라도, 그 외의 대부분의 요소에서는 미군이 훨씬 유리하므로 독일 전차병 입장에서는 셔먼을 만난다는건 그외의 야포나 항공지원, 다른 대전차 전력도 걱정해야되는 것이기에 셔먼이 현실적으로 크게 불리한 것은 아니였다. 거기에 76mm로 업그레이드 된 셔먼은 최소한 '''정확히 사격을 가하거나 고속철갑탄 등의 특수탄종을 사용시 자신을 뚫을 수 있었을테니, 잠재적 위협요소가 하나 증가한 셈이다.''' 물론 그 시기가 굉장히 늦긴 했지만, 76mm를 장착한 셔먼이나 그 이외의 차량에 대응하기가 어려웠을 것임은 자명하다. 좋은 예가 바로 [[크레이튼 에이브럼스]] 소령이 75mm셔먼을 가지고 아군 항공지원도 없이 판터를 갖춘 독일 장갑부대를 8:3.1이란 교환비를 기록하면서 박살내버린 아라쿠르 전투. 아라쿠르에서의 판터는 셔먼의 매복에 걸려들면서 상당한 피해를 냈는데, 셔먼 2대가 매복하고 있다가 접근해오는 판터 2대를 격파했으며, 판터가 퇴각하기 시작하자 증원온 셔먼 4대가 우회해서 판터 8대를 추가로 격파해버렸다. 여기에서 셔먼쪽 피해는 없었다. 전차의 개별 성능도 중요하지만 기존에는 판터가 주로 방어적 상황이라서 유리했었지만 이번엔 오히려 매복에 당해서 형세부터 나빴고, 적의 움직임을 미리 간파했기에 측면을 쉽게 잡을 수 있었다는 게 컸다. 또한 대부분 간과하는 점은 셔먼의 75mm와 76mm는 전차의 임무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대보병, 대경장갑, 대진지, 그리고 4호 전차와 같은 동급 전차를 상대할 때 충분한 수준이 아니라 매우 우수한 무기였다는 점이다. 물론 독일군 기갑전력의 하이엔드인 중전차를 만날때는 곤란해지는 부분이 있지만 이 경우는 정말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문 경우였다. 또한 [[셔먼 파이어플라이]]의 예를 볼 수 있듯이 중장갑에 대적하기에 최적화된 포는 그 외의 다양한 임무에는 부적합한 경우가 많다. 고폭탄의 위력이 낮아질 뿐 만 아니라 같은 시간에 투사할 수 있는 포탄의 수도 적어지고 휴행탄수도 적어지기 때문에 전투지속력이 낮아지기 때문이다. 쉽게 예를 들자면 기관총 진지 하나 잡는데 90mm탄 혹은 17파운더을 쓰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부담이 있고 아까운 짓이다. 100번에 2,3번 정도 만날까 말까한 상대를 위해서 주력 전차를 전부 업건하여 나머지 97,98번의 임무에 대한 효율성을 낮추는건 군대 입장에서도 현명한 처사는 아니며, 그런한 예외의 경우에도 TD나 포병, 공군과 같이 다양한 수단으로 충분히 접근이 가능하기 때문에 전쟁의 큰 그림적인 측면에서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